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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22.11.18.목] 건양대 제왕절개 수술 - 너와의 만남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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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전 7시 58분

오늘 오후 1시쯤 수술예정이다.

새벽 5시쯤 링겔을 꽂고
전공의쌤이 오셔서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 건지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수술방식에는 1. 전신마취 2. 하반신 척추마취가 있었는데 난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저번에는 아이를 보지 못 했지만
이번만큼은 꼭 보고싶었다.
첫째 레몽이를 안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남은 태아사진만으로 레몽이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레몽이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하긴... 어떤 걸로 그리움을 채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척추마취를 선택해 아이를 보겠다고 말했지만
아이가 뱃속에 오래있어서 상태가 좋지 않을거라며
보지 않는 것을 권유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이번에도 못 보면...
내 가슴에 한이 맺힐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상의끝에 일단 나는 전신마취로 진행하고
아이는 최대한 깨끗히 씻어서
볼 수 있는 상태면 보게 해드리고,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아이를 안도록만 해주신다고 하셨다.


신랑, 수술실에 들어갈 전공의쌤은
분만실 담당 간호사님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고
1.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2. 직접 만든 배냇저고리 입혀주기
3. 아이 발도장 찍어주기로 하셨다.


정말 정말 감사했다.
너무나 감사했다.
이 슬픈 상황에서도 '감사'가 나올 수 있다니...


그 뒤, 이성기교수님께서 오셔서
오후 1시 수술실에서 보자고 하셨고
신랑이 다시 한 번 아이를 볼 수 있게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낮 12시
양 다리에 간호사님이 준 압박스타킹을 신고
소변줄을 꼽았다.
와... 너무 아프다.
난 주사도 잘 맞고 아픔을 잘 참는 편인데
이건...ㅠㅠ 다른 산모분들이 왜 그렇게 아프다고
기분이 안 좋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저번 제왕절개때는 척추마취 후 꼽아주셔서
잘 몰랐다ㅠㅠ



소변줄을 끼우기 전
아래쪽을 구석구석 소독하고
'아~' 말해보세요~ 하는 순간 소변줄을 끼워 넣는데
ㅠㅠㅠㅠㅠㅠ
왜 소리를 지르라고 하는지 알겠다.
입 다물고 했으면 본능적으로 내 몸이 위로
피했을 것 같다.
긴 줄을 꽂고 또 꽂고ㅠㅠㅠ
다시는 겪고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 순풍이만 살아난다면 백 만번도 더 소변줄 꽂겠다...'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조금 이따가 간호사님이 들어오셨고
병상채 본관 3층 수술실로 옮겨졌다.
신랑과 인사를 나누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이제는 진짜 순풍이와 헤어져야한다는
생각에 슬펐고
혹시나 정말 혹시나...
신랑을 다시 만나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이름, 오늘 받는 수술을 물어보셨고
조금 이따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전신마취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전신마취를 해서 흔들리는 치아가 손상될 수 있다,
기도삽관을 할 거고 호흡기를 통해 산소를 공급해줄 거다. 기도삽관으로 인한 혹여 발생될 부작용 ㅠㅠ
기타등등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이동식 침대로 옮겼다.
간호사님이 도와주시지만 소변줄을 낀 채로
다른 침대로 옮기기는 힘들었다...ㅠㅠ



다시금 순풍이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고 간호사님이 휴지를 챙겨줘서
닦았다...


수술방 입성
수술대로 옮겨졌고 옷을 벗겨주셨다.
가슴쪽은 수술포로 가려주시구
하반신은 오픈된 상태에서 빨간색 소독약을 발랐다.



울면서 우리아기 좀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손가락에 산소포화측정기 부착
이마에... 등에...가슴쪽에 뭘 측정하는 작은 침을
부착했다. 심전도 등을 체크하는 것 같다.
살짝 따가웠다.
그리고 내 양쪽 팔, 다리를 벨트로 묶었다...ㅠ


마취과쌤이 들어와서 흔들리는 치아 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치아상태 체크


근처에 보이는 이성기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마취과쌤한테
전신마취 시작해달라고 하셨고
마취과쌤이 산소호흡기를 쐬주시고
다른 간호사쌤은 마취약이 든 주사기를
내 링겔 호스에 꽂았다.
난 "으윽...팔이....따가워요오........"말했고
마취과쌤이 "네~ 그럴 수 있어요." 대답을 끝으로
내 시야가 흐려졌다.


...



조금씩 눈을 뜨면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삐-삐-소리들...
회복실인 것 같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셔서, 무사히 잘 끝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우리 애기...어딨지...?
우리 아기를 만나 볼 수 있다는 이 '슬픈설렘'


수술이 끝나면
비록 숨은 멎었지만 우리 딸 아이를
만나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 수술을 견딜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게 씌워져있는 산소호흡기...
목이 너무 따가웠다.
수술내내 기도로 산소가 들어가게끔
기도삽관?! 뭘 끼워서?! 그런 것 같다.

아...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예전에 레몽이 보내고 느낀 그 복부 고통...
타들어갈 듯한 뜨거움과 찢어질 것 같은 아픔...
옆에서 간호사님이
"호흡 크게 쉬고 계속 호흡하세요.
호흡 떨어지면 안 돼요."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시계가 보인다.
3시 15분?!
수술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구나...


나는 회복실에서 조금 더 있다가 나왔고
신랑을 만났다.
나 때문에 애 탔을 마음을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했다.
난 괜찮다는 표정을 보이며
"우리애기 봤어...?
우리애기 어딨어...?"라고 물었다.


넘 보고싶다.....
우리아가


우리 딸, 순풍이는 1.7kg정도
넘 이쁘고 귀엽단다.
통통하냐고 물어봤다.
1.7kg이라 너무 마르지는 않았을까 싶었는데 통통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양수에 오래있어서 부은 듯 하다...




나는 텅 빈 분만실로 옮겨졌고
테이블 위에 뉘여진... 내가 만든 겉싸개에 둘러싸인
뭔가가 보인다.
겉싸개 안의 존재...
내 딸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내 딸, 순풍이...
지금 이 순간에는
미여지는 가슴보다
저 조그마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순풍이의 사랑스러움이 크게 느껴졌다.


오빠는
사랑하는 우리 딸 발도장을 먼저 보여줬다.
와... 순풍이 발이다...ㅎㅎ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태동, 힘찬 발차기
이 조그마한 발로 찼겠지...?
어쩜 이리 이쁠까...ㅎㅎㅎ
정말 소중하다.
너무나...


오빠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까 오빠랑 한 약속 알지...?
오빠가 순풍이 봤는데... 넘 예뻐...
근데 뱃속에 며칠 있어서 얼굴 보기가 좋지 않아...
보면 가슴이 많이 아플거야...
그니깐 안기만 하자...응? 괜찮지?"
속으로는
'오빠도 봤는데...나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생각보다 강한데'라고 생각했지만
고집부리지 않기로 했다.
오빠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있을테니...
얼굴을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순풍이를 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사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오빠는 우리아기를
병상에 누워있는 내 가슴에 놓아줬다.
나의 한 손은 아기의 머리를 받치고,
한 손은 아기의 몸을 끌어안았다.
안에는 수술포로 아기를 감싸고
밖에는 내가 만든 겉싸개로 감싸서 그런가...
아기의 형체를 자세히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기의 묵직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오빠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고 부탁하고
순풍이에게 계속 뽀뽀해주며 말했다.

"순풍아... 엄마야...ㅎㅎ
너무 예쁘다. 존재만으로도 정말 예쁘다.
고마워. 너무 고마워.
엄마곁에 와줘서...
엄마 정말 행복했어...ㅎㅎㅎ
고마워. 내 딸.
우리 순풍이.
엄마이름은 ooo.
아빠이름은 ooo.
잊지마...알았지?
하늘나라에서 레몽이오빠랑 재밌게 지내다가
오빠 손 꼭 잡고 엄마아빠한테 와야해!
엄마, 아빠 여기서 기다릴거야...
하나님한테 쫄라서라도 꼭 와야해...!
순풍아...미안해..!
엄마때문에 이 세상 구경도 못하고 가네...

순풍아...엄마가 저번에도 말했지?
엄마는 이런 일 겪는다해도 널 다시 품을 거라고...
우리 순풍이는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고 갔어...
엄마...순풍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
진심으로 제일 행복했다...
고마워 순풍아...
너무 고마워...!

순풍아...사랑해 사랑해...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해. 내 딸.
너의 모든 걸 사랑해."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이 이야기만 반복했던 것 같다.




입원 전
레몽이 때와 마찬가지로
순풍이에게 쓴 편지를 잘 접어서
추후 순풍이 관 속에 잘 넣어줬다.

오빠와 나의 이름, 생년월일을 잊지않고
엄마아빠에게
레몽오빠랑 손잡고
순풍이가 꼭 다시 와주기를...


오빠가 들어왔고 나는 말했다.
"나 행복해... 순풍이를 이렇게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해... 근데 순풍이 발이 어딘지
자세히는 못 느끼겠어...ㅠㅠ"
오빠가 다리쪽을 만져보라고 알려줬지만
아쉽게도 잘 느끼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순풍이 머리쪽에
뽀뽀를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평생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겠다.


순풍이를 오빠에게 건네줬다.
아직도 생생하다.
평생 잊지못할 묵직함...
내 딸의 그 묵직함...
그 묵직함이 주는 '슬픈행복...'


첫째 레몽이를 안지도 못한 채 보낸 나에게는...
지금 숨이 멎은 아이를 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이런 나도 행복한데
살아있는 아이를 안은 산모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언젠가는 그 행복을 느끼고 싶다...



병실로 옮겨지는 내내
우리 딸 발도장을 들고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레몽이때와 달리
내 마음은 '슬픔, 원망, 자책'이 아닌
'평안, 희망, 감사, 잔잔한 행복'이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신기하다.


며칠 전,
순풍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안 다음 날
허망하게 앉아있을 때....
매일 정오마다 울리는 핸드폰 성경 한 줄 어플이 울렸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위로같다.

그래.
우리에게 환난과 우환이 왔지만
주님께서는 허락하신 이유는
결국 나의 기쁨을 위한 일이었으리...

내가 주님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ㅠㅠㅠ
저 깊은 내면에서는
'꼭 이렇게 내 기쁨을 위해서
일하셔야합니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결코 기쁘지않고 슬퍼요 주님!!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신다고 하셨는데...
저희 부부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시길래...
이 고통을 또 주시나요...!
저희 부부도 감당 못해요...하나님...
그니깐 제발 저희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있는 아이 좀 안게 해주세요...흑흑흑'
이라고 소리쳤다.


코로나이후
현장예배는 나가지 않은지 2년이 되간다.
그러면서 밖에 식당으로 밥먹으러는 나가는...
주일 영상예배 때, 설교듣다가 잠드는
난 그저그런 기독교인이다.
난 전혀 신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붙잡을 분은
하나님뿐. 예수님뿐...
이 모두 일이 나를 위한 선한 길임을 믿는 것밖에는
선택권이 없을 뿐이다...


병실로 돌아와 조용히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또 한 번 삶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살겠다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못 하겠어요...
다만 우리의 시간, 물질 등 여러사람을 위해
흘려보낼 수 있게 해주시고
한 생명,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게 해주세요.
지금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생명입니다.

주님...
다시는 어떤 이도 저와 같은 두번의 막달사산...
겪지않게 해주세요.
부디...이 고통, 슬픔을 느끼지 않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순풍이를 떠나보낸 밤
잠이 오지 않는다.
순풍이의 묵직함과 포근함을 되새기며
내 딸을 느끼고 또 느끼고싶다.



순풍아♡ 사랑해♡
우리는 늘 함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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